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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복 할렐루야 교회 원로목사 |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 횃불트리니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 주기철목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 | 한국 한영 [오늘의 양식] 발행인 |
대동강에 뿌려진 씨앗
오늘 우리는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160주년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소들이 있습니다. 저에게 그중 한 곳이 평양입니다. 제가 평양에서 태어났을 때는 웨일스 출신 젊은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가 대동강변에서 자기 생명을 바친 지 73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때는 토마스란 이름은 물론 몰랐고 평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평양이 한국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던 도시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을 뿐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야 평양의 기독교 역사가 우리 세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839년 웨일즈에서 태어난 27세의 로버트 토마스란 청년이 젊은 나이에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처음에는 중국으로 갔지만, 당시 외부 세계에 문을 단단히 잠구고 있던 나라 한국을 향한 마음이 일어나, 1865년 토마스는 처음 한국에 왔지만 잠깐이었습니다.
그 짧은 기간이었지만 토마스는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기독교 문서와 성경을 나누어 주고는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마음에서 한국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1년 뒤 1866년, 이번에는 토마스가 제너럴 셔먼호라는 미국 상선을 타고 대동강으로 들어왔는데 그 항해는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그 배와 조선 당국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고, 결국 배는 불탔고 토마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나이, 겨우 스물일곱 살,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매우 짧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한국 기독교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1884년 원더우드와 에펜셀라가 한국에 오기 거의 20년 전이었습니다.
토마스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후대의 한국교회의 증언에 의하면, 토마스는 성경을 가지고 왔는데 상황이 점점 위험해지자 강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성경을 던져 주었다고 합니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토마스는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에게도 성경을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토마스가 전해 준 성경과 관련해서 최치량과 박영식이라는 분들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들에 의해서 성경이 결국 평양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박영식은 토마스를 죽인 사람이라도 합니다. 그리고 토마스가 가져온 성경은 그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고 그 성경은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습니다.
평양 “동양의 예루살렘”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토마스가 성경을 들고 한국에 왔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이 평양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토마스는 대동강변에서 죽었지만, 복음의 메시지는 평양을 통해 계속 퍼져나갔습니다. 한 알의 씨앗이 심어지면 그 씨앗은 삯이 나기 전에 먼저 땅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가 순교한 지 40년쯤 지난 20세기 초에 평양은 한국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교회들이 많아졌고 학교와 병원도 세워졌습니다. 한국 목사님들이 교회의 지도자로 사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평양에서 1907년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부흥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평양은 마침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물론 토마스 한 사람 때문에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선교사와 목회자, 전도자, 성경 번역자, 한국인 신자들과 교사들, 그리고 이름 없이 살아간 수많은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최초로 그 씨를 뿌린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거두기 전에 성경과 죽음으로 먼저 씨를 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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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 |
토마스기념교회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자 한국의 기독인들은 대동강에서 생을 마친 그 젊은 선교사를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1927년에는 토마스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사업이 조직되었고 5년 후 1932년, 평양 조왕리에 새로운 교회 건물이 하나 세워졌습니다. 토마스 기념교회였습니다. 그 건물은 매우 특별한 점이 있었는데 교회의 평면을 영어 알파벳 T자 모양으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T는 Thomas의 첫 글자였습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간증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교회를 바라볼 때마다, 대동강에서 생을 마친 그 젊은 선교사를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 14일, 헌당예배가 드려졌습니다. 그때 토마스가 순교한 지 66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토마스는 그 교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찬송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 성전에 들어가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후대 사람들이 그를 기념하는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기념사업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유명한 역사적 문구가 있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The blood of a martyr is the seed of the church). 고대 터튤리안의 명언입니다.
토마스는 자기 수고의 열매를 보지 못했고 평양이 한국 기독교의 중심지가 될 것도 몰랐습니다. 언젠가 평양에 많은 교회가 있을 것도 몰랐고 수많은 한국 성도들이 자기 이름을 기억할 줄도 몰랐습니다. 토마스는 그저 성경을 갖고 한국에 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그는 심었고 다른 사람은 물을 주었고 다음 세대가 거둡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라게 하십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습니다. 결국 “토마스 기념교회”라는 이름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1945년 해방이 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는 분단되었습니다. 공산 정권이 북한을 장악한 후 그 많던 평양의 교회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토마스 기념교회 역시 사라졌습니다. 건물은 없어졌고 교인들은 흩어졌고 교회의 종소리는 더 이상 사람들을 교회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기억뿐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땅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2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땅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옛 교회가 있던 곳으로 알려진 조왕리 지역에서 평양과학기술대학교의 건축공사가 진행되던 중, 옛 교회와 관련된 흔적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중 교회와 종탑의 흔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역사가 지워 버리려 했던 것을 땅이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건물은 사라졌으나 땅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발견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교회 건물은 무너질 수 있고 교인들은 흩어질 수 있고 십자가는 사라질 수 있고 종소리도 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는 인간이 쉽게 지워 버릴 수 없습니다.
오늘은 2026년 9월 5일,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에서 순교한 지 160년이 지난 날입니다. 오늘 그분을 생각할 때, 먼저 그의 죽음의 극적인 상황을 생각하기보다는 그의 나이를 생각해봅니다. 겨우 스물일곱 살! 그 당시 조선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였고 낯선 문화를 가진 나라였고 외국인을 환영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토마스는 위험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왔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왔습니다. 평양은 한때 복음이 선포되었던 바로 그 도시, 많은 교회들이 서 있던 그 도시, 1907년 대부흥을 경험했던 그 도시, T자 모양의 Thomas기념교회가 있었던 바로 그 도시입니다.
토마스가 주는 큰 교훈
제가 태어났을 때는 그 도시의 정치적·영적 환경은 이미 크게 변해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인간이 만든 제도와 조직은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건물은 사라지고 정권도 바뀝니다. 나라는 분단되고 사람들은 흩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계속 전진합니다. 아마 이것이 제가 로버트 토마스의 이야기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일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역을 평가합니다. 교회 수를 세고 교인 수를 세고 건물 수를 세고 프로그램 수를 셉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역했는지를 셉니다. 그러나 토마스의 삶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다른 기준을 가르쳐 줍니다. 바로 충성, 충성이라는 기준입니다. 토마스는 자기가 심은 씨앗의 열매를 보지 못했고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한 젊은 선교사가 한국에 왔고 성경을 나누어 주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계속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지 볼 수 없었습니다. 토마스 순교 후 일어날 수많은 한국의 기독교인들, 토마스기념교회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이야기의 아주 작은 부분만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야기 전체를 보십니다. 토마스 선교사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분을 단순히 순교자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씨를 뿌린 사람으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씨앗, 믿음의 씨앗, 용기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한국의 역사 가운데 하나의 질문을 심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드리는 충성된 하나님의 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이루실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160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는 그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씨는 열매를 맺는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토마스의 삶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장 24절).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사라집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면 생명이 솟아납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1866년, 한 알의 씨앗이 대동강변에 떨어져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160년이 지난 오늘 이 자리에서도 우리는 그 열매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평양의 대동강은 아니지만 평양의 보통강가에 1988년에 한국교회의 손으로 세워놓은 봉수교회를 보고 있습니다. 또 칠곡교회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지금 있는 그곳에서 충성스럽게 씨를 심어야 합니다. 언젠가 통일의 열매가 올 것입니다. 북한에서 사라진 3천 교회가 다시 세워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또한 그때 북한 전역에 필요한 만 삼천 교회가 세워지는 날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세계를 축복하는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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