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한국인 첫 목사 탄생으로 본 오늘날 우리나라교회

김산 기자 김산 기자 / 기사승인 : 2021-09-07 11: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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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감리교신학대 제공.

 

[세계투데이 = 김산 기자] 지난 1901년 우리나라의 첫 번째 목사인 김창식·김기범 목사가 목사안수를 받은지 어느덧 100년을 넘어 120년이 되었다. 이에 감리교신학대(감신대)는 이들의 발자취와 의미를 다시 한번 돌이켜 봤다.

 

7일 감리회에 따르면 지난 6일 감신대에서는 교내 웨슬리 채플 시간을 통해 '한국 최초 목사 안수 120주년 기념과 미래 목자상'을 주제로 한 '제1회 감리교신학대 개교기념 아펜젤러 학술대회'가 진행됐다.

 

학술대회에서는 우리나라의 첫 번째 목사인 김창식·김기범 목사에 대해 소개했다.

 

먼저 1857년생인 김창식 목사는 황해도 수안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우는 일과 농사일을 겸하던 중 1887년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인 올링거 목사의 집에 잡부로 취직하게 된다.

 

올링거 목사 부부의 인격 및 생활태도 등의 모습에 감화된 그는 기독교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교리서를 공부하며, 세례를 받게 된다. 

 

시간이 지나 올링거 목사가 다시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김창식 목사는 미국 감리교 의료선교사 홀의 개인비서 자격으로 평양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순회 전도를 시작했다. 

 

그는 평양선교 과정 중 선교사를 도왔다는 이유로 배교를 강요당하며, 몰매를 맞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신앙을 지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난 당시 평양은 전쟁터가 됐지만, 그는 홀 선교사와 함께 평양에 남아 피난을 가지 못한 이들을 헌신적으로 섬기고, 1896년부터 4년 동안 정식으로 목회자 수업을 받게 된다. 이후 적극적으로 선교활동에 참여하며, 교회 부흥에 앞장선다. 

 

청일전쟁이 끝나고, 그는 1901년 5월 서울 상동교회에서 개최된 미국감리회 조선선교연회를 통해, 한국인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게 된다. 

 

이후 25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125개 교회 개척과 48개 예배당을 건축하고, 주위 선교사들에게 '조선의 바울'로 불리게 불렸지만, 그는 결국 1929년 건강 악화를 이유로 소천했다.

 

더불어 김창식 목사와 함께 첫 목사 안수를 받은 김기범 목사는 1869년 황해도 해룡에서 태어나 1889년 보부상과 함께 제물포를 찾은 뒤 크리스천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선교사와 함께 청년회를 만들고, 원산에서 선교활동을 펼쳐나갔다.

 

또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존슨 목사와 함께 목회 활동을 하며, 항일운동에도 적극 가담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1920년 소천하게 된다.

 

이날 배포한 학술대회 발제문을 통해 이덕주 감신대 은퇴교수는 120년 전 한국인 첫 목사 탄생에 대해 "한국 토착교회 목회자의 지도력에 대한 확증을 의미한다"며 "두 목사 안수를 계기로 한국 개신교회 목사 안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또 그는 "1901년 미 감리회의 첫 번째 한국인 목사 안수는 한국 감리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개신교회 전체의 신학교육과 목회자 양성과정을 한층 발전시킨 요인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영석 협성대 교수도 "한국인 목사가 안수받아 활동하며, 한국 교계에 한인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한국의 기독교 선교가 상당히 활성화됐다"면서 "우리는 두 목사님이 복음을 위해 전 생애를 바쳤던 것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잊지 말고, 세상으로 달려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학술대회에서는 '목사란 누구인가'를 주제로 하여, 현재 정체성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교회와 목회자의 역할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김산 기자 snae@segye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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