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기이한 선교사...'게일'을 아시나요

유제린 기자 유제린 기자 / 기사승인 : 2021-09-23 09: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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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에 조선에 들어온 '파란 눈의 선교사'...40년간 사역
-영문 성경의 ‘갓(God)’을 우리 말 ‘하나님’으로 처음 표기
-게일 선교사 기획전...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12월 30일까지

▲제임스 스카스 게일(1863~1937) 목사 초상화/ 사진= 연동교회 제공.

 

[세계투데이 = 유제린 기자] 130여년 전 서양에서 조선인은 미개인으로 묘사됐다. 당시 북미에서 YMCA(기독청년회) 파송 선교사로 조선 땅을 처음 밟은 선교사가 있었다. 1888년 조선 땅에 첫 발을 들인 그는 한국 기독교의 초석을 깔고 우리 문화의 진수를 서양에 소개하는데 큰 공을 들였다.

 

한국 기독교계의 역사적인 인물이자 조선시대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1863~1937)의 얘기다. '기일'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불린 그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을 졸업한뒤 25세이 되던 해인 1888년 파송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와 40년간 선교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게일은 당시 우리 말과 글을 빠르게 익혀 주변을 놀라게 했을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들었을 만큼 어학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찬송가는 물론 존 버니언의 소설 ‘천로역정’ 등도 우리말로 번역했다.

 

현재 성경책에서 일반화된 '하나님'이란 표현도 그의 번역에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성경 요한복음과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고린도서 등을 한글로 번역했는데 영문 성경의 'God'을 '하나님'으로 표기해 교계가 보급한게 지금의 성경에 이르렀다. 

 

조선 문화 알리기에도 힘썼다. 그는 조선시대 고전 문학 작품인 '춘향전'과 '홍길동전', '구운몽' 등의 한글 서적을 영문으로 번역해 고향인 캐나다와 미국 등으로 보내는 등 우리의 문화를 서방 국가 등에 알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게일은 그 만큼 조선에 대한 깊이와 이해도가 높았던 선교사로 꼽힌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선교사 게일은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선교사처럼 유명한 분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조선에 대해 이해가 깊었던 선교사였다"고 평가했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는 그의 일생과 업적을 기리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글의 가치를 발견하고 해외에 전하기 위해 노력했던 각종 활동들을 비롯해 그의 성장기부터 은퇴까지의 일생을 다뤘다는게 박물관 측 설명이다.

 

'기이하고 놀라운 사람 게일'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당시 그가 번역한 천로역정(1895)과 예수행적기념시(1910), 게일역 신구약전서(1925) 등 30여점의 유물자료와 일대기를 표현한 각종 사진과 그림 작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승재 학예사(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는 "게일 선교사는 조선 시대 이 땅에 복음 전파 뿐만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존중하고 한글을 알리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에 대한 이해와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 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유제린 기자 wpfls1021@segye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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