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4년 영어가 서툴지만 큰 꿈을 가진 한국 청년 Billy를 미국에서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이후 1959년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Billy의 고향, 한국으로 건너가 Billy의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합니다. 처음 한국어를 접한 Trudy는 ‘멸치’, ‘김치’, ‘개나리’와 같은 생소한 사물들을 접하고, 하나하나 이름의 뜻을 배우며 한국의 문화에 서서히 적응해 갔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Trudy는 시어머니, 시누이, 성도들, 동네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나눴습니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Trudy는 창의성을 중시하고, 여러 활동을 통해 기독교 통합교육이 가능한 수원 중앙기독유치원을 열게 됩니다. Trudy는 모두가 차별 없이 어우러져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동체를 꿈꿨습니다.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섬기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파이를 굽고 나누며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어 갔습니다. 또한 파이 판매를 통해 필요한 학생들의 장학금을 마련하여 그들이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매일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해 온 Trudy는 10여년간 계속되던 항암치료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자 다른 이들에게 부담이 될까 말을 줄여갔습니다. 그러던 중 Trudy는 그림을 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근육을 사용하느라 도움을 받으며 서툰 손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점차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마늘, 화분, 연필과 같은 평범한 소재들을 몇 시간씩 관찰하고 그림으로 표현해 나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Trudy의 그림은 새로운 대화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Trudy의 대화는 이제 언어와 문화를 넘어, 삶 속에서 묻어나는 사명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에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또 하나의 씨앗이 심어지고, 말씀되신 예수님을 따라 그분의 마음을 다양한 ‘말, 그 이상의 대화’로 나누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병찬 작가는 7살부터 수원 중앙기독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통합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말보다 먼저 배운 그림으로 좋아하는 사물들을 그리는 것을 즐겨하던 소년 시절, 그림은 작가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재밌는 놀이터가 되어주었습니다.
소년의 눈과 손에 담긴 일상 속에서, 매일 보고 먹는 것들, 곁에 있는 친구들, 느끼는 마음을.. 말로는 다 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행복한 소년 병찬은 그렇게 작가가 되어갔습니다.

이병찬 작가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그려보며 상상의 세계를 펼칩니다. 나에게 오지 않는 축구공, 내 마음대로 들어가지 않는 골프공도 그림 속에서는 자유롭습니다. 맥도날드의 감자튀김과 콜라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나비가 되기도 하고, 지구 위에서 공놀이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것들을 그리고 싶은 작가는,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을 그려내며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깁니다.
사진 속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통해, 작가가 경험하는 평범하고 소소한 순간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함께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병찬 작가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들은 이미 그 모습 그대로 완벽하고,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그가 그려가는 익숙하고도 특별한 일상의 그림 앞에서 그 행복한 대화가 나누어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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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찬 작가 작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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