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세돌, "알파고 이긴 유일한 인간" 패배 정말 아팠다...

우도헌 기자 / 기사승인 : 2019-11-27 08: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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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자가 돼도 인공지능은 이길 수 없어"
"알파고에 3연패 후 '얼마나 욕먹나' 궁금해 댓글 찾아봐"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기의 대국을 벌인 이세돌. 연합뉴스 자료사진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
'인류 대표 기사' 이세돌(36) 9단이 세계 바둑 무대를 주름잡던 시절에 남긴 말이다.

그랬던 그가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며 바둑돌을 내려놓았다.

이세돌이 현역 은퇴했다. 이세돌은 지난 19일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24년 4개월간의 프로기사 생활을 마감했다.

이세돌은 12세이던 1995년 7월 입단한 후 18차례 세계대회 우승, 32차례 국내대회 우승 등 모두 50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린 한국의 간판 바둑기사다.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세기의 대국을 벌이면서는 한국을 넘어 인류를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밝은 미소의 이세돌. 연합뉴스 자료사진

◇ 알파고 이긴 유일한 인간, 알파고 때문에 은퇴 결심
은퇴 후 두문불출하던 이세돌을 25일 서울 중구 충정로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은퇴 이유는 명확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나오니, 미친 듯이 해서 다시 일인자가 돼도 제가 최고가 아니더라. 내가 지독하게 해도 컴퓨터에 밀린다는 것을 느꼈다"라며 "일인자가 돼도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인공지능의 벽을 느껴 프로기사 타이틀을 벗었다. 그런데 이세돌은 인공지능 알파고를 이긴 최후의 인간으로 남아 있다.

2016년 3월 13일 알파고와의 딥마인드 챌린지매치 5번기 4국에서 180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알파고는 컴퓨터 스크린에 '기권(resigns)' 메시지를 띄우며 항복을 선언했다.

이세돌의 백 78수가 알파고를 무너뜨렸다. 중앙 흑 한 칸 사이를 끼우는 묘수였다. 알파고는 마치 당황한 듯 악수를 거듭했고, 형세는 순식간에 이세돌 쪽으로 기울었다.

78수는 기계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있었던 인간에게 희망을 안긴 '신의 한 수'였다.

그런데 이세돌은 78수에 대해 "꼼수죠, 뭐"라며 의외의 답변을 했다.

이세돌은 "정확히 받으면 안 되는 수였다. 지금도 '절예'(중국의 바둑AI)에서 그런 버그(오류)가 일어난다. 절예가 사람에게 두 점 바둑에서 잘 안 지는데, 질 때는 묘하게 진다. 버그다"라며 78수가 버그 때문에 신의 한 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4국에서 극적인 '인간 승리'가 나오기 전, 이세돌은 앞서 열린 1∼3국에서 알파고에 내리 3연패를 당했다.

이세돌은 "댓글을 잘 안 보는데, 유일하게 알파고에 3연패를 하고서는 댓글을 찾아서 봤다. 얼마나 욕을 먹고 있나 궁금해서 봤는데, 생각보다 욕을 잘 안 하시더라"라고 떠올렸다.

이세돌은 챌린지매치 전야제 행사에서 패배를 직감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느낌이 이상하더라. 구글 딥마인드 사람들이 너무 자신 있어 하더라. 이미 내가 져 있는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국에서 이세돌은 1승 4패로 졌다.'

2016년 프로기사회와 갈등 겪은 이세돌. 사진 오른쪽은 양건 전 프로기사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은퇴 재촉한 한국기원·기사회 갈등…"모난 돌이 정 맞는 것"
한국기원, 프로기사회와의 갈등도 이세돌의 은퇴 결심에 영향을 줬다.

이세돌은 2016년 5월 '기사회가 권한을 남용하고 적립금을 부당하게 뗀다'는 이유로 기사회를 탈퇴했다.

지금은 한국기원에 적립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며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2009년에는 한국바둑리그에 불참하고 중국리그에 참가하려고 했다가 한국기원이 징계를 내리려고 하자 6개월간 휴직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세돌은 "2009년 일본기원에 들어가는 것을 고민한 적도 있다"며 "하지만 국적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여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곳에서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세돌은 "지난해 은퇴할 생각이었다. 작년이 마지막 승부를 겨뤘던 해였다"며 "그런데 사람이니 은퇴하는 게 쉽지 않더라. 미련이 생기더라. 정리라도 깔끔하게 하고 끝내자는 생각에 올해까지 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기원이 지난 7월 '기사회 소속 기사만 한국기원 기전에 참가할 수 있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면서 이세돌은 어느 대회에도 출전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이세돌은 제대로 정리도 못 한 채 사직서를 제출했다.

인공지능의 벽 때문에 은퇴를 결심한 이세돌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과 은퇴 기념 대국을 벌일 예정이다.

다음 달 국산 바둑 인공지능 '한돌'과 이세돌의 '치수 고치기' 이벤트 대국이 추진되고 있다.

첫판은 두 점을 깔고 두고, 대국 결과에 따라 치수를 조절한다. 이세돌과 한돌의 실력 차이를 정확히 판단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이세돌은 "두 점을 깔고 두는 첫판은 아마도 내가 질 것 같다"며 "요즘 바둑 뉴스도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 은퇴까지 했는데 편하게 두고 싶다. 물론 두면 최선을 다하겠지만"이라고 했다.'

2019년 3.1절 기념대국을 펼친 이세돌 9단과 커제 9단. 사이버오로 제공


◇ "구리는 좋은 친구. 커제는 귀여워"
자신의 은퇴 소식에 SNS에 "너의 미래에 건배"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 중국의 구리(36) 9단과의 추억도 꺼냈다.

'동갑내기 라이벌' 이세돌과 구리는 2014년 10번기를 벌이기도 했다. 결과는 6승 2패를 거둔 이세돌의 승리였다.

이세돌은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좋은 친구였다. 10번기는 제가 자신 있어서 한다고 했다. 중국에서 열려서 구리가 질 것 같았다. 귀찮은 행사에 많이 불려 다녔을 거다"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커제(22) 9단에 대해서는 "저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 커제는 되게 귀엽다"라며 웃었다.

5살에 아버지 고(故) 이수오 씨에게 처음 바둑을 배운 이후 평생 바둑만 둔 이세돌은 자신의 바둑 지론에 대해 "나는 감각으로 둔다. 오래 뒀으니 대충 감으로 때리는 거다. 수를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세돌은 "양자택일 문제가 나오면, 그때에는 둘 중 어느 수가 좋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런데 바둑이 끝나려면 50∼60수는 더 둬야 한다. 경우의 수가 한도 없이 늘어난다. 감으로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수 앞은 못 보는 게 맞다"고 했다.'

2016년 알파고를 꺾고 해맑게 웃는 이세돌.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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